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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터로부터

현재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롯데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충재와 DHL의 2인전 〈From Vector〉는 그들의 고민과 생각이 오롯이 담긴 결과물이다.

자신의 작품 앞에선 DHL과 김충재. 작품의 제목은 왼쪽부터 ‘Haze[O/R] 1-01,1-02,1-03,1-04’, ‘Mold 5 (ed.2)’. ‘Mold 4 (ed.2)’

작년 7월 분더샵에서 열린 단체전에서의 첫 만남 이후, 김충재와 DHL은 비슷한 관심사와 고민을 가진 동료 아티스트로서 서로의 작업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해왔다. 현재 이들은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롯데갤러리에서 2월 25일까지 진행되는 2인전 <From Vector>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모색중이다.  김충재와 DHL이 ‘아트’라는 벡터를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이자 인플루언서로 성장했듯, 이번 전시의 주제인 ‘벡터(Vector)’에는 작은 부분에서 커다란 가치로 확장되어 나갈 수 있는 세상 모든 것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

 

김충재와 DHL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공간 구성에 중점을 뒀다.

 

제품 디자이너와 그래픽 디자이너로 색깔 차가 분명한 두 아티스트가 2인전을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또한 첫 협업 과정은 어땠나?

김충재 : 이번 전시는 롯데 갤러리에서 열리는 2018년의 첫 전시이자 ‘스피커’ 소속 아티스트로서는 첫 번째 전시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의미있는 전시라는 생각에  제안을 듣고 흔쾌히 승낙했다. DHL과는 평소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눠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 온 그래픽 디자인 작업 이상으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바가 뚜렷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제품을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과정 속의 많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나누고 싶었다. 협업 과정은 전체적으로 평화롭고 순조로웠던 것 같다. 이 부분은 나에게만 해당될 수도 있다. (웃음)

DHL : 작년 7월 분더샵에서의 단체전을 통해 김충재를 알게 됐고, 서로 작가로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상태에서 2인전을 할 기회가 생겼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시 주제를 정했고, 통하는 부분이 많아 전시를 준비함에 있어 막힘이 없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지금은 즐거움과 뿌듯함만 남았다.

‘벡터(Vector)’는 원래 작업의 소재로 삼아 온 요소인가, 아니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고찰하게 된 개념인가?

김충재 :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고찰된 개념이다. 우리의 2인전이 진정한 깊이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아야만 했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찾아낸 교집합이 바로 ‘벡터’였다.

DHL : ‘벡터’는 디자이너들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Adobe사의 illustrator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개념인데, 해상도가 있는 ‘비트맵(Bitmap)’ 형식과 달리 좌표 형식으로 되어 있어 무제한 확장이 가능하다. 벡터를 주제로 삼아 관객들로 하여금 개개인의 작은 아이디어나 가능성이 무제한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밑작업만 되어있는 캔버스 위에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의 서명을 적어 내려가도록 한 작품이 인상 깊었다. 이는 어떤 의도에서 기획된 것인가?

김충재 : 벡터에 대한 정의를 확립하던 때에 DHL과 함께 요셉 보이스와 백남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명 작품은 요셉 보이스가 남긴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Everyone is an artist).” 라는 명언에 착안해 DHL이 낸 아이디어다.

DHL : 이전에도 많은 작업을 했지만,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없었다. 그래서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해 주기 보다는 관객들이 직접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느끼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면 마지막에 서명을 하는데, 서명에는 자신의 습관이나 삶이 가장 잘 묻어있다. 관객들이 직접 서명함으로써 완성되는 이 작품은 결국 관객들의 색깔과 시간이 응축된 결과인 것이다.

위 작품은 전시가 끝날 때 비로소 완성될 텐데, 작품의 제목을 지어본다면?

김충재 : 요셉 보이스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주며, <An artist is everyone>.

DHL : 음.. <From Vector (2018.01.26 ~ 02.25)>.

 

공통의 간결함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김충재와 DHL의 작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김충재 : DHL과 내가 조화될 수 있는 공간 구성을 구성하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2인전이니 만큼 서로의 개성을 잘 살릴 수 있는 공간 구성이 필요했다.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후회되는 부분은 없다. 만족스럽다.

대부분의 작품이 언뜻 보기엔 입체적이지만 들여다보면 간결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는 작업을 하면서 의도하는 바인가?

DHL : 나의 디자인 철학은 ‘빼는 것’이다. 오랫동안 많은 시각물을 만들어 왔는데 결국엔 이렇게 작은 것에 에너지를 쓰게 되었다. 숲을 디자인하려면 나무를 만들어야 하고, 나무를 만들려면 씨앗을 만들어야 한다. 씨앗에 많은 영양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건강한 나무들로 가득 찬 멋진 숲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 단순하고 명확할수록 이야기를 전달하기 좋다.

 

Chungjae Kim, ‘Mold 3-1’, Acrylic on canvas, 162 x 112cm, 2018


김충재의 경우 제품 디자이너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에서 페인팅 작품도 여럿 선보였다. 제품 디자인과 페인팅 작업의 차이점이 있다면?

김충재 :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려왔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장래희망이 화가였다. 미술이라는 거대한 분야 안에서 자라왔고 앞으로도 이 세계 안에서 성장하고 싶다. 실용적인 방법론을 배우고자 대학원에 진학하여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페인팅과 제품 디자인에 큰 차이를 두고 작업하진 않는다. 두 분야 모두 놓치고 싶지 않다.

 

DHL, ‘Haze[O/G] 2-01,2-02,2-03,2-04’, Acrylic, Silk screen on canvas, 80.3 x 100cm, 2018
DHL의 경우 색감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다. 빨강, 주황, 노랑 등의 원색은 이젠 DHL 특유의 시그너처 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색감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DHL : 나의 작품들은 원색적이다. 원색적인 것은 강렬하고 직관적이다. 내 성격과도 닮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몇 가지 색깔에 의존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색들을 연구해 그 속에 나만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느꼈으면 하는 점은?

김충재 : 전시장에서 만난 많은 관객들이 작품의 의도에 대한 질문을 주셨다. 나는 관객들이 그러한 궁금함과 모호함을 좀 더 간직해주셨으면 한다. 우리의 전시가 직관적이거나 자극적인 것이 아닌, 오래 곱씹으며 음미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한다. 달리 말해 관객들 스스로 작품을 해석하고 비평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다.

DHL : 작은 부분을 놓치는 순간 실패할 확률이 높다. 큰 꿈을 꾸고 또 이뤄내려면 각자의 작은 부분(Vector)을 많이 연구하고 크게 키워나가야 한다. 나는 디자인과 회화를 통해 삶이 달라졌다. 시각적 언어는 읽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좋은 태도를 가지면 모두가 다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은 뭐가 되었건 삶에 아주 큰 보탬이 되어 줄 것이다. 관객들이 내 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디자인과 회화의 즐거움을 알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From Vector〉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오프닝에 참석한 스피커 소속 인플루언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