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동물 프로그램을 봤다면 수의사 설채현의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SBS <동물농장>, MBC <하하랜드>, 채널A <개밥주는 남자>, tvN <대화가 필요한 개냥>, EBS1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등의 동물 프로그램에서 설채현 수의사는 마치 히어로처럼 나타나 반려견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로 알려져 있다. 반려견의 행동교정을 연구하는 많은 이들 중에서도 유독 그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반려견을 무조건 교육하기 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먼저 찾으려는 그의 방식에 있다. “보호자들에게 반려견을 이해해달라는 말을 많이 해요. 사람과 똑같이 개에게도 타고난 성정이란 게 있거든요. 그대로를 인정하고 더 나은 생활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가 타고난 성정은 사람을 대할 때도, 반려견을 대할 때도 싫은 점보다 좋아하는 점, 매력적인 점을 먼저 찾는 것이다. 설채현은 진심으로 세상에 나쁜 개도, 나쁜 사람도 없다고 믿으며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
동물병원 이름이 독특하다. ‘그녀의 동물병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을 것 같다.
병원의 이름도 그렇고, 내 이름 때문에도 그렇고 나를 여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좋은 점은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다는 거다.
내외과 진료 외에 반려견의 행동이나 성향에 관한 진료로 주목을 받았다. 행동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어렸을 때부터 꿈이 수의사였다. 그런데 대학교 때 어떤 영상에서 꿈이 직업이면 안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가 꿈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걸 보고 어떤 수의사가 될까 고민했고, 동물에게 도움이 되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다음으로 어떻게 도움을 줄지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살펴보니 병원에서 보호자가 묻는 질문의 60~70%가 몸이 아픈 것보다 행동에 관한 질문이더라. 그리고 대부분의 유기견들이 결국 행동 문제로 버려진다는 걸 보고, 보호자랑 행복하게 살면서 버려지지 않게 해주는 것도 수의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행동학 공부를 시작했다.
스스로 어떤 성향의 수의사라 생각하나?
간단하게 말하면 반려동물의 정신과 의사. 구체적으로는 보호자와 반려동물이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조언을 해주는 수의사. 진료를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이 아이가 내 아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동물 행동학을 연구하는 데에 발현되는 나만의 능력이 있다면?
새롭게 발견한 건 아니지만 더 정확하게 알게 된 게 있다. 걱정이 많다는 것, 그리고 너무 분석적이라는 것. 경험에서 나오는 직감도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지만, 나는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것을 단지 감에만 의존해 시도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아지들이 꽤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동물 프로그램에서 보면 굉장히 사나운 강아지도 당신 앞에서는 순해진다. 동물에게 어필하는 방법이 있나?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는 것. 어떻게 보면 연애 할 때의 밀당 같은 거다. 정작 연애할 때는 잘 못했는데 강아지한테는 잘 되더라. 싫어하면 다가가지 않고, 네가 괜찮으면 먼저 다가오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강아지들한테는 최고의 첫 인사다. 눈도 마주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불안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자기 페이스대로 다가올 수 있다.
반려견 행동학을 연구하면서 반대로 강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나는 특별히 호불호가 없는 사람이다. 그게 강아지 때문인 것 같다. 강아지 행동학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하는 데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사람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하면 대부분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딱히 호불호가 없어졌다. 싫어하는 건 별로 없고, 좋아하는 것만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
당연히 동물. 그리고 그 외에는 운동을 좋아한다. 공으로 하는 운동을 좋아하는데 특히 농구를 가장 즐겨 한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도 좋아한다. 요즘 많이 하는 취미생활은 아내와 함께하는 카페 투어다.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생각을 정리하고 대화하는 걸 둘 다 좋아한다.
실제로 동물을 키우고 있나?
반려견 ‘세상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을 할 때 강아지 불법번식장에서 가장 처음 구출한 아이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그리고 세상에 처음으로 나와봤다는 뜻에서 이름을 ‘세상이’라 지었다.
세상이를 포함해 진료를 보는 강아지에게 어떤 말을 많이 하나?
옳지 또는 그렇지. 칭찬을 통한 교육을 하기 때문에 ‘안돼’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도 있다. 자기 이름을 ‘안돼’라고 아는 강아지도 있다고.
동물의 행동학을 연구하는 수의사이자 인플루언서로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나?
하나의 단어나 문장만으로도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동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명료한 주제로 캠페인을 진행해보고 싶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스피커와 함께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