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는 모델이기 전에 아티스트였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입학 후 패션과 친구들의 부탁으로 취미삼아 모델을 시작했던 그는 어느새 전세계를 누비는 톱 모델이 됐다. “모델로서의 모습들은 어떻게 보면 스스로 만들어버린 거대한 장애물이다.”라고 말할 만큼 때론 모델 활동이 그의 아티스트적 정체성을 제한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패션계와 미술계 양쪽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패션과 미술 분야에서 쌓아온 그간의 커리어에 대해 김상우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지만, 각종 글로벌 캠페인의 모델로서 활약하는 동시에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여는 아티스트로 성장한 결과들은 결국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남긴 궤적이다.
한 인터뷰에서 “나는 보기 위해 산다. (I live to see)” 라고 말했다. 아티스트에게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말 그대로 나는 보기 위해서 산다. 예술은 시각에 대한 반응이며,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예술에서 시각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 중요하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만약 당신이 그것에 관해 말할 수 있다면, 왜 그리는가?”
당신은 패션계와 미술계 모두에 발을 담그고 있다. 두 분야 각각의 매력이 있을 것 같다. 패션계와 미술계를 사랑하는 당신만의 이유를 듣고 싶다.
기능적인 측면이 더해졌을 뿐 패션 또한 예술적 표현의 하나다. 패션은 사람들을 긴장하게 하는 영향력이 있으며 변화무쌍하다. 반면 미술은 쉽게 변화하지 않으며 그래서 보다 진실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쪽 세계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으며 나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존재다.
패션과 미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당신만의 방법이 있나?
나는 한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하곤 했다. 아티스트면 아티스트고, 모델이면 모델이지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센트럴 세인트 마틴 이후 골드 스미스 예술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패션에 관한 일이 진행되고 있을 땐 미술 작업을 하지 않았으며,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열 때는 모델 일을 하지 않았다.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진실성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보와 영감의 홍수 속에서 당신의 나침반이 되어 준 인물이나 사건이 있다면?
추상적 표현주의 시대 전체가 미술계에 선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파블로 피카소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다. 타고난 재능이 당신을 어느 위치까지 데려가 줄 수는 있어도, 당신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 오르도록 할 수는 없다. 피카소는 스스로 천재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작품활동을 했다. 그것이 그를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미술은 대화”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미술은 언어 장벽이 없는 대화이다. 아티스트는 작품을 창조하고, 관람자는 그 작품을 완성한다. 둘 중 하나라도 없다면 예술은 완성될 수 없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과 감성을 전달하는 것에 관한 모든 것, 그 자체가 대화라고 생각한다.
페인팅과 드로잉 외에도 사진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사진이란 매체에 접근하는 당신만의 시선이나 방식이 있다면?
사진보다도 그림이 가장 솔직하고 순수한 형태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진실한 감정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감정의 연대표다. 누군가와 한 시간 동안 만났다고 해서 진정 그 사람을 알고,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한 시간에 수십억 장의 사진을 찍는 것과 같기 때문에 피사체의 감정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으며, 즉각적이고 반복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사진 작업을 할 때는 다른 텍스처를 사용하는 등 최대한 나만의 방식으로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한다.
폴 매카시가 “마냥 추한 작품이라도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말했듯 미술은 미추의 개념이 사적인 분야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오늘날 ‘안티’라는 단어는 어떤 일반적인 표현이다. 현재 유행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들이 꼭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추한 것을 보고도 새로운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 미술(Anti-Art)’ 또한 미술이고, ‘반 패션(Anti-fashion)’ 또한 패션이다. 전통적인 미술은 말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2차원적이지만, 현재의 미술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에서 3차원 이상으로 확장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가장 흥미를 느끼는 대상이 있다면?
삶. 어떤 것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나?
계속해서 공감하고, 창조하고,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