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텍사스를 오가며 꽃을 다루는 안아랑은 자신을 기록자라고 소개한다. 자신을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에 가두지 않는 아티스트 안아랑은 ‘꽃을 만지는 시간이 너무 즐겁고 이 일이 나의 업이 되어도 좋겠다.’라는 마음에서 시작하여 자신의 발걸음을 이어나가고 있다. 다양한 꽃들은 그녀를 만나 낭만적이며 싱그러운 아트피스가 되기도 하고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조연이 되기도 한다. 어떠한 역할이 맡겨질지 모르니 다양한 분야에 준비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삶 안에서 작은 노력을 이어가는 중이라는 그녀. 그녀의 색으로 다양하게 발현될 앞으로의 그녀만의 작업물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플로리스트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한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할 당시 자연과 꽃을 좋아했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대부분 본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서 일부만을 반복해서 사용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피로를 느껴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면 내가 가진 시각적 감각과 창의성을 다양한 작업으로 충족시키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에서 꽃을 만지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보냈고 결혼하며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되었다.
플로리스트이며 비주얼 디렉터, 모델 등 다양하게 활동 중이다.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나에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실재하는 대상으로써 표현해 그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일을 즐긴다. 하여, 일을 하는 데 나의 역할에 제한을 두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어떠한 프로젝트에서 내가 모델로 필요하다면 최대한 그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기꺼이 즐거운 노력을 할 것이다.
작업의 영감은 어디에서 받나?
주변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지만 아름다운 순간들. 예를 들어, 강아지와 산책길에 만난 새로 피어나는 나팔꽃 줄기의 선적인 아름다움, 정원에 찾아오는 꿀벌들의 꽃가루가 잔뜩 붙어 통통해진다리, 사과 껍질을 벗기며 빙글빙글 돌아가며 쌓여가는 껍질들을 볼 때.
작업할 때 나만의 원칙이 있다면?
나는 그림을 그려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컨디셔닝 단계부터 꽃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그중에서 작업에 중심이 될 만한 아이들을 따로 눈여겨 두고 나머지 재료들로 밑그림을 그리듯 형태를 쌓아간다. 이 과정에서 재료들이 ‘실제 자연에 함께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부분을 시작부터 끝까지 염두에 두며 작업한다.
작업할 때, 아이슬란드 포피(꽃 양귀비)를 자주 사용한다.
아이슬란드 포피는 가녀림 속에 강인한 우아함을 지닌 꽃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사를 하며 작은 정원을 갖게 되었다. 나의 정원에서 피어나는 4월에 포피들은 나에게 행복감을 선사한다.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삶을 기록한다. 운영 중인 ARH 웹사이트는 어떤 공간인가?
‘ARH’는 ‘A Record Holder’라는 단어에서 시작된 나의 스튜디오 이름이다. 이 단어는 ‘The person or thing that has achieved something no other person or thing has achieved.’를 의미한다. 대부분 함께 작업하는 일이 많고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기록을 붙잡고 있는’ 또는 ‘기록을 보관하는’ 의미로 보이는 이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많은 사람이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 시대에 나의 작업이 누군가의 기록 안에서 유용한 가치를 발휘한다면 이것만큼 만족스러운 일이 있을까. 나의 작업은 나의 기록인 동시에 작업을 함께한 누군가의 기록이기도 하니까.
웹사이트에 꽃으로 만든 모빌을 보았다. 꽃이라는 유한한 존재를 모빌로 표현한 이유가 궁금하다.
꽃이라는 재료로 균형과 형태를 쌓아가는 연습을 하며 탐구하는 나날 중에 시들어 가는 재료들을 보며 ‘더 오랜 시간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모빌 작업의 시작이었다. ‘균형’의 힘은 세상에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작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모빌 작업은 균형의 조화를 탐구해 나가는 표현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보통 일과가 어떻게 되나?
‘보통의 날’에는 한 시간 정도의 운동을 한 뒤 일과를 시작한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장 보는 일에 진심을 쏟고 정원을 돌보는 일, 좋아하는 책과 영화를 감상하는 것, 앤틱스토어를 구경하러 다니는 것, 시간이 날 때마다 거리가 먼 곳의 화원들을 둘러보는 일 등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작업이 있는 날’은 부지런히 재료를 모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한국의 8배 크기의 텍사스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꽃을 구하는 것이 꽃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숙명과도 같은 일상이다.
요즘 새롭게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 있다면?
정원을 가꾸는 일. 직접 식물들을 키워보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갈 때가 많다.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마음도 식물에 관한 지식도 조금씩 커진다. 예상치 못하게 식물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죽을 때 마음이 아프다가도 실패를 발판 삼아 조금 더 좋아진 정원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한 해가 지나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다음 해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만의 감도를 담은 인스타그램 피드 속 일상이 인상적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여성은 어떤 모습인가?
아름다운 여성은 자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자기 내면과 외면을 깊이 알고 그것에서 나오는 건강한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선하게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지향점이 있다면?
세상을 새롭고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고 지속해서 성장하며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삶을 살고자 한다.
Photo by Seongwoo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