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놓인 ‘사물의 풍경’은 그곳에 머무는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이 되기도 한다. 아네스라고도 불리는 아티스트 홍지희의 아뜰리에가 딱 그렇다. 아무렇게나 놓인 듯 하지만 조화롭고, 각각의 개성과 사연이 묻어나는 물건들로 가득한 그녀의 공간은 단순히 취향을 넘어 그녀의 작품세계를 관통한다. 유화 물감, 유리, 자개 등 다양한 요소들을 흩뿌린 아트워크에 속에 자신의 생각과 사연을 교묘히 숨겨 넣는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 사연, 생각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시리즈마다 전혀 다른 기법을 활용해 불규칙해 보이지만 메시지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요. 각각의 순간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죠.” 아티스트 홍지희가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전하는 이 무언의 소통방식은 다소 불친절하지만, 그 어떤 소통 방식보다 진솔하고 꾸밈이 없다.
작업 방식이 독특하다. 다양한 요소를 버무려 완성해 거침이 없고 자유분방한 느낌이다.
나는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난 정규 미술 교육에는 썩 맞지 않는 아이였다. 보지 않고 마음대로 상상해서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미술학원도 그리 오래 다니지 않았다. 부모님도 역시 같은 생각이던 것 같다. 미술보단 서예와 글짓기 같은 것을 배웠었다. 대학시절에는 그것이 콤플렉스였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런 배움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페인팅을 기초로 콜라주를 하기도 하고 물감을 켜켜이 쌓아 입체감 있게 연출하기도 하며 자개, 유리 등의 오브제를 더하는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틀에 박힌 것에 질문하고 자유롭게,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나에겐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그린 그림을 기억하나?
처음 그렸던 그림은 두 살 때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림은 내게 일종의 놀이였다. 생각을 끄적이는 것부터, 본격적인 그림까지 끊임없이 작업하며 내 길을 찾았다. 힘들고 막막한 순간도 때때로 찾아왔지만 그림이 좋았고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었다.
아네스라는 활동 명이 독특하다.
어릴 때 받은 세례명이다.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리는 모든 그림이 순수하고 솔직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작품세계를 펼칠 때 느낌과 직감에 따라 한 번에 그림을 그리는 편인가? 아니면 철저하게 계획한 대로 그려나가는 편인가?
평소에 ‘공상’을 자주 하는 편이므로 전시나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오히려 그 발상법을 응용하고 있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내 마음에서 끌어내어 생각의 지도를 만든다. 그래서 작품 구상 시간이 꽤 긴 편이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글과 문장을 가지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캔버스에 그려낸다. 작품에서 느껴지듯 느낌대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편이어서, 주로 사물을 보고 기억한 뒤 스케치 없이 작업한다. 무언가를 따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찾은 나만의 방법인데 자연스럽게 나만의 그림체로 표현되더라. 그림과 여행은 닮은 점이 많은데 여행도 그렇다. 철저하게 계획하기보단, 발 닿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편이다.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동시대적 아티스트 혹은 뮤즈가 있다면?
독일 출신의 미국 작가 키키스미스의 작업을 좋아한다. 그녀는 어두움에 대한 용기가 있고, 솔직하다. 일상과 경험, 내면을 잘 관찰하고 표현해 내는 여성작가라고 생각한다. 나의 장단점을 모두 알지만 함께하는 친구들, 가족 역시 내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뮤즈다.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요즈음 판화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이 예술에 대한 관점을 좀 더 편안하고 쉽게 접근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성, 사람과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친구들과 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
홍지희에게 예술이란?
무언의 소통.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가 아닐까? 일상과 인생, 예술은 분리될 수 없다.
좋아하는 운동이 있나?
요가를 오랜 시간 느리게 하고 있다.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가쁜 일상의 쉼표가 된다. 요즈음은 동적인 운동에도 눈을 돌렸는데, 사이클이 그 중 하나다. 식단은 무언가 몰두하면 몸과 건강에 소홀하기 쉬워 평소에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을 되도록 피하려고 노력한다.
선호하는 브랜드를 소개해달라.
낡아도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브랜드를 고집하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내 몸에 맞추어 입는 것을 좋아한다. 굳이 꼽자면, 실용적인 브랜드를 좋아하는데, 이세이 미야케, 질 샌더의 윈드 재킷이 그 중 하나다. 디올의 클래식 바 자켓은 나의 몸에 꼭 맞는다. 바티스트라는 국내 디자이너의 니트웨어도 좋다. 랄프로렌이나 조셉의 클래식하면서 편안한 분위기도 좋아한다.
어떤 인플루언서가 되길 꿈꾸는가?
진정한 영향력이란 생각과 행동,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과 영감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
스피커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패션 브랜드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협업을 통해 나의 취향과 감각이 묻어나는 옷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Photo by Youngsang Ch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