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롤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을 고스란히 풀어내는 칠드런 아티스트이다.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고스란히 종이 위로 가져올 수 있도록 아이들 못지 않게 깨끗하고 맑은 마음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다. 현재,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어떤 제약 없이 마음껏 뛰놀며 작업하고 싶은 소망으로 제주로 거처를 옮겼다. 전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나라의 아이들과 그림으로 소통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바람을 미리 들여다봤다.
칠드런 아트는 생소한 장르이다. 간략히 소개해주면?
아이들이 표현하는 자신의 세계를 스케치북 위로 가져오는 작업으로 내가 만든 미술의 한 장르이다. 작업의 결과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소통하고 직접 작업하도록 이끌어 내는 모든 과정도 칠드런 아트의 한 부분이다.
칠드런 아트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8년, 아동미술 강사 일을 시작했다. 그림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상상 속 동물’을 그리는 수업을 했다. 나는 아이들이 날개 달린 돼지나 목이 긴 코끼리처럼 여러 동물의 모습을 조합하여 그릴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런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 중 어떤 친구가 형체를 알 수 없는 수채화를 그리고 있길래 무슨 동물인지 물었다. ‘봄에 나비가 날아가는 냄새’를 그린 거라고 했다. 그 대답에 나는 소름이 돋고 정신이 멍해졌다. 오감을 여는 그림을 그날 처음 경험했다. 나는 그때부터 아이들의 세계에 흠뻑 빠져 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의 어려움과 남다른 즐거움이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탄생되는 작업은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작업할 때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을 미술 재료로 사용하게 하는데 그 과정이 무엇보다 신비롭고 예측 불허하며 무한하다. 다른 어떤 것과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요즘 가장 흥미로운 작업은?
정물을 그리는 과정이 재미있다. 하나의 정물을 다른 방향에서 보고 여러 번 그려본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다 보면 가지고 있는 상태와 성질을 발견하게 되고 그 특성을 그림으로 담을 수도 있다. 그대로 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요즘 나의 그림에 새로운 시도가 된다.
수업뿐 아니라 작업, 전시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소개하자면?
현재 오랜 친구인 신혜림 사진 작가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로드 드립에서의 과정을 담으려고 한다.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 어떻게 표현해 낼지 고민 중이다. 미국, 이탈리아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점, 선, 면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책과 전시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영감을 어디에서 얻나.
작업이 내게 여행이자 영감 그 자체이다. 제주에 오고부터는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바람 소리와 하늘, 마당에 새로 피고 지는 식물들. 집이 숲 속에 있어서 동물들도 많이 본다. 반딧불이, 꿩 그리고 노루들도.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 계기가 있나.
처음에는 서울 부암동에 작은 마당이 있는 오두막 작업실을 지었다. 그러나 주택가이다 보니 그 곳에서 자유롭게 아이들과 노래 부르고 이야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들과 큰 소리로 자유롭게 합창을 해도 될 만한 공간을 찾다 보니 제주로 오게 되었다.
현재 제주의 생활은 어떠한가.
다섯 글자로 파라다이스. 자연을 마음껏 즐기며 자연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좋다.
스피커와 함께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림으로 소통하는 것.
궁극적으로 성취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림 안에서 공백을 갖는 것. 어느 시집에서 읽었던 구절이 미지의 도착점처럼 느껴졌다.
‘공백은 언제고 색이 없느라 빛이 나니까요.’
인플루언서는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다. 인플루언서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고 싶은지.
모든 일에 대한 나의 비중을 100%로 채우려고 하다가도 때론 0%로 만들고 싶은 순간이 있다. 누구든 혼자 100%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다양한 사람들과 0%와 100%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며 공놀이하듯 나의 미술을 통해 소통하고 싶다.




Photo by Jan